돌아온 문장

사라진 계정

십수 년 전에 계정 하나를 지웠습니다. 트위터라는 게 한국에 막 들어오던 무렵부터 쓰던 계정이었습니다. 140자가 세상의 단위이던 때였습니다. 낯선 사람들이 서로의 아침과 밤을 읽었고, 응답은 빨랐고, 말은 가벼웠습니다. 저는 팔로워가 꽤 있는 편이었고, 연예인들이 모이는 자리에 초대받기도 했습니다. 지금 말하니 조금 우습습니다만, 그때는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계정을 지운 이유는, 여기서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날 이후로 저는 인터넷에서 오래 조용했습니다.

가장 뜨거웠던 한 줄

그 계정에서 가장 멀리 갔던 글은 제 문장이 아니었습니다. 남을 바꾸고 싶다면 먼저 자신을 바꿔야 한다는, 어느 철학자의 말이었습니다. 수백 번 옮겨졌고, 모르는 사람들의 타임라인을 오래 떠돌았습니다. 문장은 제 손을 떠나 저 혼자 돌아다녔습니다. 어떤 날은 처음 보는 사람이 그 문장을 저에게 들려주기도 했습니다. 제가 옮긴 문장인 줄도 모르고요. 제가 쓴 어떤 글보다 멀리 갔습니다. 남의 문장이 저를 대신해 말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말 대신 지은 것들

조용해진 뒤로는 말 대신 다른 것을 만들었습니다. 집을 지었습니다. 그 과정은 이 채널 어딘가에 목소리 없이 남아 있습니다. 사진을 찍었습니다. 밤바다에 낚싯대를 드리운 사람들을 오래 바라봤습니다. 그들은 어둠 속에서 오래 기다리는 사람들이었고, 무엇을 기다리는지는 묻지 않았습니다. 아주 긴 소설을, 아주 천천히 옮겨보기도 했습니다. 끝낼 생각보다는 계속할 생각으로 하는 일이었습니다. 말을 아끼는 동안에도 무언가는 계속 쌓였습니다. 다만 그 모든 것에 목소리를 붙이는 일만은 미뤄왔습니다.

문장의 주인을 잊다

얼마 전, 그 문장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그 말을 누가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 겁니다. 니체라고 적었던 것 같은데, 비트겐슈타인이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책장을 뒤졌습니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에서 이렇게 씁니다. 먼저 재가 되지 않고서, 어떻게 새로워질 수 있겠는가. 비트겐슈타인은 노트에 이렇게 적습니다. 혁명가는, 자기 자신을 혁명할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찾다 보니 같은 말이 톨스토이의 이름으로도 떠돌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세상을 바꾸려 하지만, 아무도 자신을 바꾸려 하지 않는다고요. 물론 그 문장을 톨스토이가 정말 썼는지도 분명하지 않습니다. 올해 초에는 소설을 한 권 읽었습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괴테의 문장을 쫓는 학자의 이야기였습니다. 어떤 문장이든 괴테의 이름을 붙이면 그럴듯해진다는 농담이 제목이 된 소설입니다. 다들 비슷한 것을 앓고 있는 모양입니다. 결국 제 문장의 주인이 누구였는지는 찾지 못했습니다. 대신 다른 것을 찾았습니다. 서로 닮은 데라곤 없는 사람들이 같은 자리에서 만나고 있었습니다. 변화는 자기에게서 시작된다는 자리입니다.

문장을 나에게 되돌리다

남을 바꾸려면, 먼저 자신을 바꿔야 한다. 십수 년 전 저는 그 문장을 남들에게 건넸습니다. 이제야 받는 사람을 잘못 골랐다는 걸 압니다. 그 문장은 처음부터 저에게 오는 중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긴 추적의 끝에서 갖고 싶은 것이 하나 생겼습니다. 출처가 분명한 문장입니다. 제 이름이 붙은 문장이요. 그래서 오늘부터 이 조용하던 화면에 목소리를 조금씩 얹어보려고 합니다. 무엇이 바뀌는지는 두고 보면 알게 되겠지요.


이 글은 같은 제목의 영상으로도 있습니다. https://youtu.be/VAeSVtFI4oY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비트겐슈타인, 『문화와 가치』
스즈키 유이,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